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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족하다. 이 한마디에 찔린다. 죽어도 만족할 수 있으니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죽음은 고통의 끊어짐이요, 죽음은 소망의 완성이다. 야곱은 요셉을 잊은 적 없지만 산 줄도 모르고 죽은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요셉이 살아서 야곱을 만난다. 시므온이 잡혔을 때는 자식을 살리려는 다급함보다 곡식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배고픔에 도달해서야 다시 시므온을 찾으러 갔다. 기근을 양식으로, 싸움이 화해로, 인신매매가 섭리의 도구가 되고 요셉을 보고서야 야곱은 '죽어도 좋다'는 한마디를 한다. 요셉은 바로의 허락을 받아서 자기 가족들을 고센으로 인도하게 한다 그 곳에서 아버지와 형들과 온 집의 식구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한다. 요셉은 먹이는 자다. 자기 백성을 보호한다. 그러나 고센은 기근을 피하기 위한 임시 처소이지 약속의 땅은 아니다. "출산을 위한 땅일 수는 있지만 약속이 성취되는 땅은 아니다". 임시처소에서도 양식을 공급하며 가족들 돌보고, 출산을 위해서 그들을 먹인다. 약속을 성취하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삶은 어디서나 이어진다. 임시거처 같은 이 처소에서 사는 이들을 돌보며, 먹이고 나누고, 입히는 것이다. 나의 임시거처는 '제국' 바로에게 속했지만 이곳에서 벗어나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한 제국'에 속하여 나의 삶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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